"처세술"
내가 서울대 치과대학에서 박사 공부를 하던 때였다. 나는 치과 병원 개원한 것도 다 정리하고 서울대에 풀타임으로 연구하러 들어갔었다. 나의 학위를 맡은 지도교수는 깐깐하기로 유명한 사람이었다. 그저 깐깐하기만 한 정도가 아니라 어떤 때는 말이 통하지 않았다. 그 교수님이 노려보면 많은 학생들이 뱀 앞에 선 개구리처럼 얼어붙어서 꼼짝도 못하는 것을 수도 없이 봤다. 심지어 밤에 악몽을 꾼다는 학생들을 여럿 만나 봤고, 나 또한 그런 사람 중 하나였다.
학생들이 교수님 앞에서 쩔쩔매는 이유는 한 가지다. 그 교수님이 학위를 주기 때문이다. 교수가 마음 먹으면 학위 안 주는 것은 식은 죽 먹기다. 학위를 받지 못하면 학교를 수 년 동안 다닌 것이 무용지물, 아무 쓸모 없어진다. 여러분이라면, 내가 5년 이상 죽어라 공부했는데, 아무 결과도 얻지 못하고 나간다면 기분이 어떻겠는가?
교수님이 깐깐하다 보니 많은 학생들은 버티지 못하고 자퇴하여 떠나갔고, 나는 어려움을 견디고 그 당시 10년 안팎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유일한 학생이 되었다.
교수님이 일을 엄청 많이 주면서 다 해 오라고 하는 적이 많았다. 일이 많아서 다 해가지 못하면 '밤을 새서라도 다 해와야지!' 하면서 호통을 치셨다. 그래서 나는 학교에서 밤을 새서 일을 다 한 적이 있다. 나는 칭찬을 받을 줄 알았는데 교수님이 '왜 밤에 학교에 남아 있어! 사고 나면 니 책임이야!' 라고 또 호통을 치신다. 대체 어쩌라는 건지. 결국 나는 집에 가는 척하면서 숨어서 학교에서 밤새 일하고는 하였다. 나는 아직도 이 상황에 대한 해답이 이것밖에 없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한번은 DNA와 관련된 연구를 수행하던 때였다. 나도, 교수님도 치과의사이다 보니 DNA에 대해서 자세히 알리가 없다. 서점에 가서 분자생물학 책을 보면서 공부하였고, DNA와 관련된 논문을 여러 개 찾아다가 보기도 하였다. DNA를 증폭하기 위한 PCR을 해 본 것도 그 때 처음이었다. 생물학과에 가서 배워 오든지 하면 금방 할 것을, 연구 정보가 노출된다고교수님은 다른 과게 가지도 못하게 하셨는데, 정말 맨땅에 헤딩하는 기분이었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결국 방법을 알아내긴 했지만, 결혼해서 가정도 있는 사람이 주말에 집에도 못가고 연구실에서 틀어박혀서 PCR을 돌리고 지냈었다.
당시 진행하는 DNA 관련 연구는 특히나 어려운 주제였는데, 본격적인 연구를 진행하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치과의사들만으로는 역량이 부족하였다. 그래서 대전에 있는 과학기술원에 협력 연구를 하기로 제안을 하였고, 다행히도 그 쪽에서 승낙을 하였다. 당시 과학기술원에 '양 박사'라는 분이 우리와 연구를 같이 진행하기로 하였는데, 자기들한테는 별로 도움이 안 되지만 봉사 차원에서 외부 연구소를 도와 주는 경우가 종종 있어서 같이 하겠다고 하였었다. 일단 과학기술원 분들은 인상이 좋아 보였고, 일과 외에 개인적으로 시간을 내서 우리 연구를 도와준다는 말에 고마움도 느꼈다.
연구를 진행하면서 DNA를 정제하는 과정을 해야 하는데 나는 사실 자신이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양 박사님으로 부터 전화가 왔다. DNA 정제가 매우 중요하고 어려운 과정인데, 자기 연구실에서 해 주겠다는 제안이었다. 돈도 안 받고 무료로. 나는 너무 기뻐서 고맙다고 하고 교수님께 보고를 하러 갔다.
"교수님 양 박사님께서 DNA 준비를 대신 해 주겠다고 하십니다."
나는 기쁨의 미소 대신 잔뜩 찡그린 얼굴과 노여움 가득한 표범의 눈동자를 맞을 수 있었다.
"뭐! 그걸 왜 거기 보내! 우리가 해야지!"
교수님은 자기 자료를 외부에 공유한다든지 노출시킨다든지 하는 것에 있어 굉장히 폐쇠적이었다. 나는 양 박사님께 내가 DNA 준비를 하겠다고 다시 답하였고, 양 박사님은 적잖이 당황해 하면서 알겠다고 하셨다.
나는 DNA를 준비하여 대전 과학기술원으로 보냈다. 준비하면서도 이건 아닌데 싶었다. 내가 DNA 정제가 잘 안 된 거 같다고 이야기 해도 교수님은 '니가 뭘 알아! 이 돌가리야! 시키는 대로 해!'라고 강행하셨다.
결과는 꽝이었다.
양 박사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이전의 온화한 목소리가 아닌 굉장히 격앙된 목소리였다.
"결과가 하나도 안 나왔잖아요! 내가 그래서 우리 실험실에서 하겠다고 제안까지 했잖아요! 내가 시간이 많아서 하는 줄 알아요? 쉬는 날인데 지금 나와서 이거 분석하고 있는데, 결과가 하나도 안 나온 걸 수치 입력하고 있는데, 이건 보람도 없고 시간낭비만 하고 있잖아요! 내가 해 주겠다고 약속 했으니까 해 주긴 하겠지만, 이걸로 이젠 끝이에요! 연락하지 마세요!"
나는 당황해서 교수님께 우리가 잘못해서 저쪽 연구실에서 화가 난 거 같다고 보고하였다. 그러자 교수님은 나를 자리에 앉히더니 일대일로 바라보면서 이야기를 꺼내셨다.
"난 너같은 애 학위 줄 생각 없어. 넌 정말 비도덕적이고 건방져. 니가 그런 식으로 이야기를 하면 안 되지! 양 박사, 그거 아무 도 아니야. 내가 어떤 사람인 줄 알아! 서울대 교수야! 잘못하긴 뭘 잘못해! 이 실험은 니가 다 망친 거야! 어떻게 책임질 거야! 너 학위 받지마! 박사 그만 둬!"
눈 앞이 새하얗게 변했다. 내가 오랜 기간 고생했던 것이 다 물거품이 될 판이었다. 나는 교수님께 잘못했다고 싹싹 빌었다. 사실 뭘 잘못했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빌었다.
"그래, 니가 잘못했지? 이번만 넘어가 줄게. 다음에 이러면 절대 안 된다."
논픽션 막장 드라마를 찍는 것 같았다. 지금 내가 다시 그 상황으로 돌아간다면 더 좋은 드라마를 찍을 수 있을까? 세상에는 노력만으로 되지 않는 것이 있다. 그 중에 하나가 좋은 상사를 만나는것이다.
책상에 앉아서 공부만 하면 박사가 될 수 있다면 참 편할 것 같다. 머리만 좋다고, 공부만 열심히 한다고 해서 박사가 되는 것은 아니더라. 정해지지 않은 길을 가는 것은 쉽지 않더라. 고등학교 때처럼 밤새 공부한다고 고생한다고 칭찬받고 위로받고 부모님까지 나서서 수종들던 배려를 사회에선 받지 못할 수도 있다. 내가 노력한 만큼 결과가 나오지 않을 수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실망하지 않았으면 한다. 내가 좋아하는 푸시킨의 시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에서 처럼 언젠가는 웃는 날도 오니깐 말이다.
누가 위의 만화 이거 제 이야기냐고 묻더군요. ㅡ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