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 의료를 하다 보면, 고혈압은 워낙 흔한 질환이기 때문에, 또한 점점 고혈압 진단 나이가 낮아지고 있기 때문에, 고혈압 약을 시작하는 순간을 자주 맞닥뜨리게 된다.
그런데 열에 여덟 정도는, "혈압약 한번 먹으면 못 끊는다던데, 운동하며 좀 볼래요" 하며 약 쓰기를 거부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면 나는 왜 혈압약을 먹어야 하는지 한참 이야기를 하고, 조기부터 조절하는 것이 예후가 좋으며, 혈압약을 통해 사망률을 몇%나 떨어뜨릴 수 있는지 이야기 하곤 한다. 그러면 반 정도는 설득이 되어서 약을 드시고 반 정도는 설득이 되지 않곤 한다.
내 지인 중에 한 남자분은 20대 때 고혈압으로 인한 뇌출혈을 겪어 몇년째 콧줄하고 장애를 안고 살아가고 있으며, 고혈압의 합병증 - 치매, 중풍, 심장병 등에 대해서는 워낙 할말은 많다.
그런데 며칠 전 한 순환기 내과 교수님이 (아마 나보다 10배는 더 많이 저 질문을 받았을...) 고혈압에 대해 강의하는 것을 듣게 되었는데, 단순히 140/90이라는 숫자를 기준으로 혈압약을 쓰는 것에 환자분들이 거부감을 가지는 경우가 많은데 충분히 이해한다고 이야기 하시며, 그럼에도 혈압약을 써야하는 이유에 대해, 120/80에서부터 심장병 확률이 높아지며 140/90부터는 대략 2배가 되기 때문에 그 시점부터는 그래도 혈압을 조절해야 하지 않나 하는 전문가들의 의견이 모아져 그렇게 정하게 되었다고 설명을 하셨다.
마음에 와닿았던 부분은 "충분히 이해한다"는 말씀이었다.
사실 의사들은 점점 의학적 지식이 높아가고, 환자분들의 수준은 그대로 있다. 오늘 했던 설명, 내일 또 새로운 백지상태의 환자에게 또 설명해야 하고... 이게 참 지치기 쉬운데다가, 의사와 환자와의 지식의 gap이 크다 보니 환자를 한심하게 생각하게 되는 경우도 많은 것 같다. 이것도 모르나... 이건 상식 아닌가... 매일 얘기하는 건데 또 처음 듣는 사람에게 또 이야기를 하려니 지겹다 등...
어떻게 보면 개구리 올챙이적 생각 못하는 면도 있다. 나도 언젠가는 일반인이었으니... 나도 고등학교 땐 내과는 안을, 외과는 밖을 보는 줄 알았었다...
환자가 되고 싶어하지 않는 마음, 약에 의존하고 싶지 않고 이제부터라도 내가 노력해보고 싶은 마음 등 여러 복합적인 마음들이 있을 것이다.
일단은 그 마음을 알아주자.
그리고 이야기 하자.
"가끔 끊는 분도 있어요. 한 5kg만 빼시면 끊으실 수도 있을 거 같아요. 혈압은 조기 조절이 중요하니 일단 약을 시작하고 몸무게 빠지고 습관들 많이 좋아지면 끊는 방향으로 목표를 잡아봅시다."
환자의 의견에 다 동의해 줄 순 없지만, 환자의 감정에는 공감해 주는 의사가 되어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