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유산을 하고 치료 받으러 온 환자분이 있었다.
이미 아이가 3명이 있다고 한다. 친정어머니도 함께 들어오셨다.
유산후 치료를 할 때, 향후 임신을 할 예정인지, 아닌지에 따라서도
치료에 대한 계획을 다르게 세워야할 수도 있기 때문에
다음 임신에 대한 계획이 있냐고 물어보았다.
"이제 아들을 낳아야지, 얘가 지금 딸만 셋이예요"
요새 딸 아들 구분하지 않는 가정이 대부분이지만, 아직도 아들을 찾는 집안이 존재한다.
"다음에 또 임신한 아이가 아들일지, 딸일지 그건 모르는 일인 건데요"
라고 대답해주니,
환자는 조금 어색하게 웃으면서
"그렇죠." 라고 대답한다.
지금 있는 딸 세 명이 받고 있을 자존감에 대한 상처를 잠깐 생각하니 마음이 편치 않았다.
친정어머니는 딸을 향해 다시 한 번 힘주어 강조한다
"이번에 조리를 잘해서, 아들을 낳아보자고. 아들이 있어야해"
나는 환자를 치료하러 치료실로 들어가면서
조용히 물었다
"주변에서 이렇게 얘기하면 좀 힘들지 않으세요?"
"시댁에서 워낙 원하세요"
환자는 익숙한지, 정말 아들이 낳고 싶은 것인지
혹은 감정을 숨기고 있는 것인지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아 그러시군요"
나도 더 이상 말하진 않았다.
일단 환자를 치료하는 일에 집중하리라 마음 먹었다.
사실 일여년 전에도 환자 한 사람이 딸이 둘인데, 아들을 임신하지 못해서
시댁에서 인정받지 못했다며, 아들을 더 낳고 싶다고 상담을 온 적이 있었다.
그 분의 몸상태에 임신하기엔 이미 많이 늦은 것,
그리고 늦은 나이에 임신했을 때 생길 수 있는 위험성에 대해서 설명을 해주자
그 환자분은 본인도 그것을 인정하며
이제 대학생이 된 자신의 두 딸이 그런 생각을 하는 자신에게
얼마나 화를 냈는지에 대해서 문득 얘기를 꺼냈다.
지금 있는 두 명의 딸이 얼마나 귀한 딸인지,
지금 있는 딸들이 어머님 인생에는 존재하지 않는 아들보다 더 값진 선물임을 얘기해주고,
어머님께서 인지하지 못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는 듯한 여성의 가치에 대한 인식이,
그 딸들에겐 성장하는 내내 얼마나 큰 상처가 되었을지를 아셔야 한다고 얘기드린 기억이 난다.
딸들에게 아들보다 너희가 더 귀하다고, 그렇게 얘기해주셨으면 좋겠다는 얘기로
상담을 마무리했었다.
지금의 시대가 점점 깨어나고 있지만
옛 생각들이 아직 청산되지 못해서 몇 여성들에게 고통을 주는 일이 생긴다.
아이를 임신하는 것은 너무나 귀한 일이고 기쁜 일이지만,
아이를 임신하는 것, 혹은 임신을 하지 못하는 것, 혹은 어떤 성별을 임신하는가에 따라서
한 여성의 인생이 평가당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있다.
한 성별로만 유지될 수 있는 사회는 없다.
남성이든 여성이든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만이 할 수 있는 고유의 가치가 있음을,
그 가치는 더하고 덜한 것이 아니며,
남성이라는, 여성이라는 사실만으로 서로가 서로에게 빛나는 존재가 되는 것임을
인정하는 사회, 가정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