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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3.15 12:43

아는대로 적으시오

조회 수 261 추천 수 0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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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대생의 삶은 시험의 삶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시험을 자주 보고, 시험공부를 많이 해야 한다.

의대에 들어오면 많은 사람들이 적응을 못하기도 하는데, 그것이 그동안 공부를 했던 방식이 의대 공부 방시과 다르기 때문이다. 수능을 본다든지, 또는 이공대를 다니면 논리적으로 사고하고, 계산하는 것에 익숙해진다.

그런데 의대공부는 오히려 단순 암기가 많으니, 원리가 이해가 되든 안 되든 무조건 외워야 하는 것이다. 만약 그러지 않고 원리를 이해하겠다고 끙끙 댄다면 그 사람은 필시 시헝공부할 시간을 다 허비하고 시험을 망치는 비극을 맞이할 것이다.

간혹 천재가 있어서, 그런 사람이라면 한 두번만 슥 보면 다 이해하고 외우던데,  나를 포함하여 대부분의 학생은 그렇지가 않으니 말이다.

그런데 수 많은 시험 중에서도 참 인상 깊은 시험을 치는 과목이 있었다. 본과 1학년 때 치렀던 병리학 시험이었는데, 시험 문제가 단 1개이다.

"병리학에 대해 아는대로 다 적으시오."

시험 문제 유출에 대한 걱정도, 컨닝에 대한 감시도 필요없다. 매년 문제가 똑같다.

제한된 시간 내에 아는 대로 다 적어 내려가려면 팔이 아프다. 그런데 이런 시험이 더 큰 당혹감을 준다. 알면서도 당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꼭 써야지 준비했던 내용들이 생각이 나지 않기도 한다.

답안지는 당연히 몇 장이 된다.

그리고, 당연한 거지만, 시험 끝나는 순간 머리가 하얗게 되면서 외웠던 것들을 다 까먹는다.

내가 뭘 썼지 조차 헷갈리기 시작한다.


채점을 어떻게 하는지도 의문이었는데, 수많은 풍문도 돌았었다.

가장 그럴듯한 풍문은 선풍기 채점법이었다.

글을 많이 쓴 대로 점수를 준다는 논리인데, 교수님이 선풍기 앞에 답안지를 한꺼번에 날리면, 글씨를 많이 쓴 답안지일 수록 잉크의 무게 때문에 짧은 거리를 날아가고, 그런 거 부터 높은 점수를 준다는 그런 소문이었다.


성적이 잘 나오는 아이들은 대체 어떻게 적었길래 성적이 잘 나올까.

뭘 적었는지 물어보면, 교과서대로 적었다는 아주 이상적인 답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교과서는 1000페이지가 넘는 아주 두꺼운 책인데, 책을 다 적었을리는 없을 텐데 말이다.


정말 기상천외한 시험 문제. '아는대로 다 적으시오.' 교수님은 컨닝에 대한 걱정도, 문제 유출에 대한 걱정도 없으실 것 같다.


이런 교수님의 학습 방식에 훈련이 되어서 그런 걸까. 우리 학교의 병리학 정리집은 전국에서도 유명해서 전국에서 돈을 주고 사다가 보는 정도까지 발전해 버렸다. 혹시 교수님은 청출어람을 실현하는 구도자의 교습법을 쓰시는 건 아니셨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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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rofile
    밝은미래 2020.03.19 16:12
    선풍기 채점법.. ㅎㅎ
    어떤 기준으로 점수를 매기실지 궁금 ㅋ
  • profile
    medical 2020.04.09 11:35
    결론이 해피라서 다행
  • profile
    drimkim 2020.05.01 03:24
    ㅋㅋㅋ 알면서도 당하는 듯한 느낌 ㅋㅋㅋ 알거 같네요^^
  • profile
    준걸 2020.05.23 12:22
    ㅎㅎㅎ웃프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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