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미건조했던 치과대학 본과 시절.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 힘들고, 다들 지쳐가고 삶의 낙을 잃어 가는 그 때, 나에게는 한가지 낙이 있었다.
화백 ( 畫伯) : 그림 그리는 것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
참고- 김화백: 김성모 만화가의 별칭이며 김성모 작가를 높게 부를때 쓰인다. (출처: 네이버 사전)
시작은 우연히 접한 웹서핑이었다. 드래곤볼에서 베지터와 프리저가 싸우는 장면을 대사만 바꾸는 패러디가 유행하고 있었다.
원래 대사는 이렇다.
졸개 적: 이럴 수가! 8천, 9천, 만..... 전투력이 계속 오르고 있어!
베지터: 엄청난 고통을 감내하고 이룬 결과란 말이다!
프리저: 호오! 대단하군요. 하지만 노력으로만 이길 수 있는 건 아니죠. 제 전투력은 10만입니다.
패러디한 대사는 이런식이다.
<패러디 예시>
졸개 적: 이럴 수가! 700, 800, 900..... 토익 점수가 계속 오르고 있어!
베지터: 새벽 영어 학원, 길거리에서 영어 듣기, 하루종일 고시원 공부한 결과란 말이다!
프리저: 호오! 대단하군요. 하지만 취업에 토익이 다가 아니죠. 저는 S대 박사입니다.
나는 본래 창작 활동을 즐겨 했던 차라, 다른 사람들이 한 패러디를 보면서 나도 패러디를 하고 싶은 욕구가 생겼다. 당시 우리 과에는 성격 좋고, 성적도 중상위 정도하면서 엉뚱하고 자주 놀림 받는 친구가 있었다. 몇 몇 아이들은 그 친구 별명을 '찌질이'라고 불렀었다. 한편, 치대 1등이 나와 친한 사이였었다. 그러한 설정을 이용하여 패러디를 하였고, 과내 온라인 커뮤니티에 내 패러디를 올렸다. 어떤 반응이 나올까 조마조마하면서 기다렸다. 다음날이었다.
<내 패러디>
졸개 적: 이럴 수가! 생리학 A, 약리학 A, 재료학 A, 병리학 A...... 학점이 계속 오르고 있어!
찌질이 친구: 경쟁자가 공부 못하게 방해하고, 교수와 조교에게 사바사바해서 정보를 얻고, 컨닝까지 하면서 이룬 결과란 말이다!
치대 1등: 호오! 대단하군요. 하지만 학점이 다가 아니죠. 나는 치대 1등. 당신과 비교를 거부합니다.
결과는 대박이었다. 모든 친구들이 패러디를 보고 박장대소 하였다. 어떤 이는 집에 가서 몇 번이나 보기도 하고, 캡쳐해서 싸이월드에 퍼 나르기도 하였다.
그 때부터였다. 나에게 '신 화백'이라는 별명이 붙었다.나는 용기를 내어 몇 편의 패러디를 또 올렸다. 점점 나의 인기는 상승해 갔다. 그러나, 달도 차면 기우는 법. 강력한 경쟁자가 나타났으니. 바로 '김 화백' 이었다. 당시 김 화백은 포토샾의 달인이었는데, 나는 포토샾 사용 법을 몰라 그림판 프로그램만 사용하고 있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그림의 퀄리티가 김 화백이 높을 수 밖에 없었다. 이것은 마치 믹서기로 주스를 만드는 사람과, 손으로 으깨서 주스를 만드는 사람의 차이와 같은 것이었다. 나도 포토샾을 사용하고 싶었지만, 바쁜 치대 생활 가운데 새로운 기술을 습득하기란 쉽지 않았다.
인기의 반전을 노리고 기다리던 어느날,
나에게 요약 정리집 표지 디자인 의뢰까지 들어왔다. 과목은 미생물학이었다.
나는 아이디어로 승부수를 걸 수밖에 없다는 판단하에 며칠을 고심하여 디자인 작업을 완료하였다.
'디아더스'라는 영화 포스터를 패러디 하였다. 디아더스 영화 내용은 이렇다. 어떤 집에 사람과 유령이 같이 살고 있었는데, 유령은 자기가 죽은 줄 모른다. 그러다 보니 사람이 집에서 생활하면서 물건들이 저절로 움직이는 등, 발생하는 현상이 유령의 소행인 줄 생각하다가, 마지막에 자기가 유령임을 깨닫는 반전이 있다.
나는 표지에다가 세균들이 집에 기괴한 현상이 발생했다고 수근덕 거리고, "We are not dead!" 라고 절규하다가 항생제 맞고 본인이 세균임을 깨닫게 되는 명작을 그려냈다. 마지막에 다음은 기생충이다라는 단서를 주어 후속작에 대한 복선까지 남기면서 말이다.
이 표지 디자인 이후로 나의 입지는 누구도 넘나볼 수 없는 넘사벽이 되고야 만다.
어떤 친구는 나에게 이런 질문을 하였다.
"너 솔직히 말해 봐. 너 웃기려고 학교 다니는 거지?"
어떤 개그맨이 서울대 치대 다니다가 자퇴하고 개그맨으로 전향했다고 하지만 나는 그정도는 아니었다. 공부만 하기엔 치대의 생활이 너무나 고통스러울 수 있기에, 나는 그저 치대생들의 고통을 덜어주는 진통제일뿐, 정신까지 잊게 만드는 N2O 웃음가스가 될 수는 없는 법. 내 고등학교 동창 중에 서울대 의대생이 있었는데. 그 친구도 재밌는 행동을 많이 해서, 주변 사람들이 학교에 오면, '웃겨봐! 또 웃겨봐!' 요청이 빗발쳤다고 한다. 그 친구도 웃기려고 학교를 다니는 것은 아닌데 말이다.
인기가 높아지면 안티도 생기는 법. 웃음 뒤에는 일부 비판도 뒤따랐다. 패러디는 패러디일 뿐인데. 현실과 가상을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었다. 예를 들어 '찌질이 친구'는 그 패러디 이후 많은 상위권 학생들의 견제 대상이 되어 버렸다든지.
나의 패러디로 인해 피해를 입을지 모르는 혹시 모를 사람에 대한 미안함. 아! 이것이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던 시인의 마음인가!
그 때 어떤 형의 한 마디는 내게 큰 위로가 되었다.
"너의 창작의 고통에 큰 경의를 표한다."
진정한 화백이 되기 위해서, 모든 사람을 웃기기 위해서는 큰 창작의 고통이 뒤따르는 법. 그 고통을 이겨내야 애벌레에서 나비로 변모될 수 있는 것이다.
훗날 '목사'라는 별명을 얻기 전까지 '화백'이라는 별명은 내게 큰 보람이고 자부심이었다.
벌써 수 십년 전의 일이라니 세월이 참 빠르다. 지금은 포토샵을 공부해서 사용할 줄을 안다.
가끔 생각한다. 내가 그 시절 포토샵을 알았다면, 무엇이 더 달라졌을까. 포토샵을 못 했기에, 남들 보다 더 아이디어를 짜야 했고, 더 많은 마우스 클릭을 해야 했으며, Ctrl+Z의 마법을 누릴 수가 없었다.
그러나 도구나 환경의 열악함에 불평하지 않고, 현실에 충실한 것. 이것이 프로가 되기 위해 정말로 중요한 자세가 아닐까.
아 정말 재미있는 글이네요 ㅋㅋㅋㅋ
'신작가'라는 새로운 별명도 어울리는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