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과 치료를 많이 받아본 사람들은 느낄 것이다. 치과마다 진단도 다르고 치료도 다르다. 그래서 치과는 믿기 어렵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나는 양심적인 치과의사가 되고 싶었다. 옛날에는 양심적인 것이란 치과대학 교과서에 있는대로 치료를 하는 것이라고 생각을 했었다. 교과서에는 충치가 큰 경우에 신경이 드러나지 않으면 약을 바르고 신경치료를 하지 말라고 되어 있었다. 그런데, 나는 수없이 그렇게 치료를 했지만, 대부분 환자들이 통증이 생기고 결국은 신경치료를 하는 경험을 하였다. 어떤 경우에는 치아가 부러져서, 교과서에 보면 발치를 하라고 되어 있어서 환자에게 이를 빼야 한다고 이야기를 했더니 환자는 멀쩡하게 잘 쓰고 있는 치아를 왜 빼야고 이상하게 생각하고 간 적도 있었다.
수십년 전에 있었던 일이다. 치과대학을 졸업하려면 일정 분량의 환자 치료를 해야 하는데, 학생에게 치료를 받으려는 환자를 구하기가 매우 어렵다. 어떤 치과대학생이 '저는 교과서대로 양심적으로 치료를 하겠습니다'라고 광고를 했다. 그 광고를 본 치과의사들이 '그럼 우리는 비양심적인 것이냐'라며 분개를 하며 항의를 하여 문제가 된 적이 있었다.
많은 치과의사들의 진료하는 모습을 보면 교과서의 그것을 그대로 따르지 않는 경우가 많다. 예전에는 나는 그런 것이 본인의 편의를 위한 비양심적인 행동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막상 내가 치료를 하다 보니, 교과서에 있는대로 하면 치료가 실패하는 경우가 더러 있어 혼란에 빠지게 되었다.
내가 학생 때, 약 10년 정도 선배님이 수업에 들어오셔서 한 말씀이 있다. "교과서는 믿을 수 있는 거니?" 그 말에 나는 정확하지 않은 거도 있을 수 있고, 논문을 더 봐야 하지 않을까요라고 대답을 했다. 그러자 그 분은 또 "논문은 믿을 수 있는 거니?"라고 질문을 하셨다. 그 때는 잘 몰라서 대답을 할 수 없었다. 논문이란 것도 양질의 논문이 있고 저질의 논문이 있다.
어떤 선배는 그런 이야기를 한 적도 있었다. "니가 지금 교과서에서 보고 있는 것들, 그거 수십년 전 연구들 내용 가지고 쓴 건데, 그게 틀린 게 얼마나 많은 줄 알아?" 충격적인 말이었다.
가끔 선배 치과의사 앞에서 구술 시험을 볼 때가 있다. 그 때, 나는 교과서에 있는 대로, '치아교정 때, 치아 이동량이 적을 수록 재발이 잘 되고, 이동량이 많을 수록 재발이 적다'고 이야기 했었다. 그 선배는 수석으로 졸업한 명석한 분이라는 이야기도 들었었다. 그 선배가 피식 웃으면서, '그게 상식적으로 말이 되냐? 그건 그냥 어떤 논문의 주장일 뿐이야.' 라고 이야기 하였다.
갓졸업하고, 새내기 의사 시절, 나는 교과서대로 치료를 하려고 노력했다. 교과서의 내용을 지키지 않는 선배의사들이 잘못되었다는 생각도 많이 가졌었다. 그런데, 그럼에도 가끔, 나는 치료가 잘 안 되고, 다른 분들은 치료가 잘 되는 경우가 있다. 그럴 경우 나의 신념의 근간이 흔들리며 혼란에 빠졌었다. 대체 양심적인 치료란 어떤 것일까?
치의학박사기 되고, 공부를 하게 되면서 나는 그러한 의문에 일부 해답을 얻게 되었다. 의학이란 것은 계속 발전하고 있기 때문에 과거에 옳다고 여기던 것이 훗날에 잘못된 것으로 나타날 수도 있는 것이다. 논문이란 것도, 다 똑같은 가치를 가지는 게 아니고, 급이 다른 논문이 있는 것이다. 또한, 내가 대학교에서 배우던 지식들은 대부분 서양에서 연구한 것을 기초로 교과서를 작성을 하였다. 서양인과 한국인은 식이습관도 다르고 치아 형태도 다른 등 큰 차이가 있고, 이것은 치료 방법의 차이로도 이어지게 되는 것이다.
우리 나라 사람을 대상으로 한 연구를 기반으로 한 교과서의 집필이 그래서 필요한 것이다.
만약 후배 치과 의사가 나와 같은 고민을 가진다면, 이제는 이런 나의 경험과 생각을 전해 줄 수 있을 것 같다. 기존의 지식을 바탕으로 보수적으로 행동하되, 함부로 다른 사람의 치료를 판단하지 말라. 과학이란 것은 끊없는 패러다임의 전환을 통해 발전하는 것이다.
물론 교과서를 기본으로 기초를 잘 잡아야겠지만 그게 완벽하지않고 때로는 잘 못이 있거나 아니면 더 좋은 대안이 있을 수 있다는것을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