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에는 종합병원에서 호스피스를 했었다. 그때는 이미 말기인 상태에서 환자분들을 만났었고, 당연히 힘든 상태인 것을 알고 있고, 또 곧 돌아가실 것을 알기에 이미 마음을 비우고 있었던 것인지, 환자분들이 돌아가실 때 가슴이 잠깐 먹먹하였지만 곧 기억에서 사라져갔던 것 같다.
그런데 로컬에 나오고 나서, 지금도 가끔 암 환자분들을 보는데, 그 중 한분은 이전병원에서부터 내가 병원을 옮길 때 나를 따라오신 분이다. 병기상 평균여명이 5년 정도 되는 골수섬유증 환자였는데 나를 따라오신게 진단 후 2년 쯤 무렵이었다. 와서 여러가지 인생얘기 한참 하시고 어떨 때는 본인이 한끼 대접하겠다며 자꾸 종용하시던... 나를 따라 병원을 옮기면서 내 전화번호를 알게 되어 자꾸 좋은 글귀를 카톡으로 보내시던 60대 남자분이셨다.
병으로 인해 숨이 차셔서 계단을 오르시진 못했으나 기본적인 일상생활은 하시더니, 어느때부턴가 자꾸 입원을 하시기 시작하셨다(입원은 내가 이전에 있던 병원의 후임 선생님께 맡겼었다). 카톡으로는 잘 견디고 있노라고 했다. 그리고 조만간 퇴원하면 찾아뵙겠다고... 그러더니 얼마후에는 다시 입원을 했다고... 이식을 하면 완치가 될 수 있겠느냐고...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마지막까지 즐겁게 지내도록 할게요.였다. 그러더니 어느날 생각해 보니 몇달째 연락이 없으셨다. 그리고 이제는 1년쯤 되어간다.
아마도 돌아가셨을 것이다. 긴 호흡으로 몇년을 환자분을 보니, 몇달, 몇주 만났던 환자분들하고는 또 다른 감정을 느끼게 되는 것 같다. 이 분은 이제 이 세상에 안 계시구나. 얼마전까지도 나와 똑같이 죽음을 두려워하고 하루하루의 일상을 살아가는 숨쉬는 존재였는데, 이제는 나와는 다른 차원에 계시겠구나 생각하니 마음 한구석에 무언가가 빠져나간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이다.
호스피스 종사자들에게 소진(burn-out)이 중요하게 다뤄지는데, 이러한 고인에 대한 애도(grief)도 큰 부분을 차지한다. 어떤 분은 자기는 그런 것 없다고 생각했는데, 소진 관리 프로그램에서 어느 순간 펑펑 울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고 한다.
이러한 애도반응은 정상적인 것이다. 물론 돌아가시는 분을 자주 보는 사람들은 더 자주 느끼게 될 것이고, 어떤 경우는 하도 이런 것들이 반복되다 보면 compassion fatigue라고 해서 동정에 대한 실증? 피로? 같은 것, 또 어떤 경우는 우울이나 무기력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내 마음의 한 부분이 비워졌지만, 오늘도 새로운 환자들로 인해... 새로운 살이 차고 붙기 시작한다. 살아있는 동안 죽음을 두려워하는 나와 같은 한 존재로서, 이 시간이 영원하지 않음을 알고 사랑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