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의 시간 관리법

by 치의학박사 posted May 09,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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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 수록 세상이 편해지고 있다. 이제는 응급실 당직의가 당직 서고 나면 다음날 쉰다고 한다. 우리 때는 상상도 못하던 일이다. 밤새 당직을 서도 당연히 다음날 출근해서 똑같이 일해야 했었는데. 잠은 복불복으로 1시간 잘 수도 있고, 2시간 잘 수도 있다. 어떤 사람은 환자 없이 쭉 자는 경우도 있다.

대학병원에서 수련을 받는 다는 것은 참 바쁜고 힘들다. 2차 병원은 조금 낫다고 들은 것 같은데. 수련을 받는 전공의들은 그래서 시간을 잘 써야 한다. 보통 전공의가 되면 나이가 20대 후반 이상이 되고, 평균적으로 30살 중반 정도 된다. 그러다 보니, 연애도 해야 하고, 결혼도 해야 하고, 가끔은 결혼해서 가정이 있는 사람도 있다. 사람이 어떻게 일만 하면서 살 수 있나. 이것저것 챙기면서 살 아야지.


치과에서는 여러 과 중에서 구강외과가 가장 바쁘다. 수술이 많다는 특성 때문에 특히나 매사에 조심해야 하고, 공부도 많이 해야 하고, 당직을 서야 하는 경우도 많다. 구강외과에 내 친구가 지원했다가 면접을 보았다. 한 교수님이 "구강외과에서 수련 받으면 많이 바쁠 텐데 시간 관리 어떻게 할 건가?" 라고 물으셨다. 그 친구는 "주말에 영화도 안 보고 놀지 않고 열심히 공부하겠습니다."라고 하였다. 교수님께서 화들짝 놀라시면서 "아니! 영화를 볼 생각을 했어? 시간이 없다고! 시간이!" 라고 대답하셨다고 한다. 친구가 말문이 막혔다고 한다.

구강외과도 그렇지만, 의과에서도 외과 관련된 곳은 전공의가 병원에서 사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어떤 치과대학 구강외과 전공의는 결혼을 했는데도 집을 한달에 1번 간다고 한다. 거의 병원에서 사는 것이다. 

내가 인턴 때 구강외과 턴을 돌고 있었는데, 나는 멋도 모르고 일요일에 집에 가겠다고 했었다. 레지던트 선생님이 할 일 다 했으면 가도 된다고 하셨다. 할 일을 다 했다고 생각하고 집에 갔다가 월요일에 참담하게 혼났었다. 환자 정보를 정리만 하면 일을 다 했다고 생각했었는데, 환자 정보를 다 외워야 할일이 끝나는 것이었다. 수술이란 것은 한 순간이라도 잘못되면 안 되기 때문에 준비를 철저히 해야 하는 것이었다.


내가 다니던 병원의 보철과에서는 수련을 받는 동안 결혼을 해선 안 된는 불문율이 있었다고 한다. 결혼을 하면 공부하는 데 방해가 되니까 그런 것 같다. 면접을 볼 때도 결혼은 언제 할 건지 물어 보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내 선배 중 한 명이 결혼을 하려고 준비 중인데 그 것을 숨기고 면접을 봤다고 한다. 그리고 합격하고 나서 교수님을 찾아가서 교수님 감사해요 하면서 청첩장을 건네 드렸고 한다. 그 때 교수님이 황당해 하시면서 멍 하니 바라보셨다고 한다.


주말에 집에 가지 않고 병원에 있으면 의외로 시간 여유가 있다. TV도 보고 핸드폰도 가지고 논다. 다만 집이 아니라 병원 안이라는 점만 다를 뿐이다. 집에 가서 일해도 될 거 같은데 못 가는 이유는 환자 차트라든지, 사용해야 하는 재료나 기구가 병원에만 있기 때문이다. 어떤 경우는 논문을 검색해야 하는데, 그것 또한 병원에서만 가능할 때가 있다. 그리고, 꼭 병원을 떠나면 응급상황이 발생하는 경우가 있어서 맘 놓고 병원을 떠나기도 쉽지 않다.


서정주 시인의 '자화상' 시를 패러디하여 읊조리기도 했었다.


[ 애비는 전공의였다. 밤이 깊어도 오지 않았다. 

어미는 여름에 가족 여행 한번만 가고 싶다고 하였으나.......   ]


전공의로 살 때는 처세술이 참 중요하다. 나는 순진하게 시키는 일을 다 해고, 그러면 또 일을 받아오곤 하였다. 어떤 사람들은 일을 다 해 놓고 쉬면서 그냥 가지고 있다가, 어느 정도 시간이 되면 다 했다고 가져가곤 하였다. 어떤 때는 팀으로 일할 때가 있는데, 내가 다 했다고 가져 갔다가 일을 또 받아와서 팀원들이 나한테 화를 낸 적도 있었다. 그러나 너무 심하게 빈둥거리다 걸리면 안 좋은 인상이 생길 수 있으니 눈치껏  적절하게 해야 한다.

어떤 친구는 교수님께 작업을 해서 이메일을 보낼 때 예약 발송으로 새벽에 보냈다. 예를  들어 밤 10시 정도에 다 해 놓아도, 새벽 3시 쯤에 예약 발송을 해 놓는 것이다. 그러면 교수님이 밤새 일했다고 생각하면서 흐뭇해 하시며 칭찬을 하신다. 나는 그런 요령을 배우지 못했는데, 그런 방법도 쓰면서 살아야지, 안그러면 전공의의 삶은 참 힘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