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뭐 먹으면 되나요?

by 리빙스턴 posted Mar 28,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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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병은 먹는 것과 관련이 있다. 어떤 병은 못 먹어서 생긴다. 중학교 때 비타민이 결핍되면 야맹증, 구루병, 괴혈병, 각기병이 생긴다고 시험 공부했던 기억도 난다.

그런데 우리 나라에서는 못 먹어서 생기는 병보다 너무 많이 먹어서 생기는 병이 많다. 즉 비만 때문에 병이 생기는 것이다.

대사증후군이라는 것도 결국은 비만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이고, 심장병, 뇌혈관 질환, 암 등 많은 병들이 많이 먹어서 생기는 병이다.

그래서 나는 고혈압이나 당뇨 환자들에게 체중을 줄여야 하고, 먹는 양을 줄여야 한다고 설명을 많이 했었다.

그런데, 환자들은 내 설명을 죽 듣고 나서 마지막에 하는 이야기가 있다.

"그래서, 뭐를 먹으면 몸에 좋을까요?"

우리 나라 사람들은 먹는 것이 보약이라는 어떤 관념이 있는 것 같다. 먹지 말라고 그렇게 이야기를 해도 결국은 뭐가 몸에 좋은지 알아보는 것으로 끝난다.

내가 알려 주지 않아도 환자들이 스스로 열심히 찾아 온다. 감이 좋다 더라, 배가 좋다더라, 뭐가 좋다더라..........

심지어 당뇨 환자가  어떤 과일이 좋다고 들었다면서 열심히 과일 먹다가 혈당이 쭉 올라간 경우도 있었다.


그래서 나는 현실을 직시하기로 했다. 환자들에게 아무리 먹지 말라고 해도 그것은 부질 없는 것.

그래서 나도 이제는 무슨 음식이 좋다고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그래야 최소한 나쁜 음식을 덜 먹으리라고 생각을 하게 되었다. 오이, 당근, 우엉, 현미 등 혈당이 오르지 않으면서 먹을 수 있는 것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런 모습이 단순히 우리 나라 사람들이 먹기를 좋아하는 측면 외에도 더 깊은 의미를 지니는 것 같아 씁슬한 기분도 든다. 우리 나라 사람들은 의사의 말을 신뢰하지 않는 것 같다.

의사는 오랜 기간을 걸쳐 전문 지식을 공부한 사람이다. 그런데 환자들은 그 의사의 말보다는 자기가 어디서 주워 들은 말을 더 신뢰하는 것이다. 또, 의사가 지적하더라도 자기 임의로 해석하고 바꿔 버리는 문제도 있는 것이다. TV에서 잘못된 정보가 흘러 나오는 경우도 있는데, 환자들이 그런 것을 알고 와서 묻는다든지, 또는 내 말에 반박을 하는 경우도 있다.

예전에는 그런 모습들이 너무 답답했었다면, 지금은 그냥 무덤덤하다. 내가 화를 낸다고 하여 변하는 것도 없다. 환자들은 내가 맘에 안 들면 다른 병원에 가서 몸에 좋은 음식이 뭔지 또 물어 볼 것이다.


어쩌면 의술이란 것은 의학과는 매우 다른 것일 수도 있겠다. 내가 알고 있다고 해도 환자가 따라오는 것, 환자가 받아들이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다. 때로는 아무 효과 없는 처방도 어떤 환자에게는 필요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이 환자를 건강하게 만들 수도 있으니, 의학과 의술은 다른 것이다. 같은 말이라도 '탄수화물, 지방 적게 먹으세요.' 보다는 '현미밥, 오이, 당근, 우엉, 미나리, 파프리카, 양파, 마늘.............. 이런 거 드세요.' 가 더 듣기 좋지 않은가?